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이 있는가.
가장 기초적인 문제로
인생의 시작점이자 끝이라고 본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먹고사는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
머물지 않는다.
사회적 문제다.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회도 위험하다.
세상에서 배고픔처럼 서러운 것도 없다.
이제 우리 사회도 기본소득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할 때라고 본다.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의는
유럽에서 17세기부터 있어왔다.
스위스는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 월 3백만 원을
지급할지를 묻는
국민투표가 2016년에 실시됐다.
결과는 부결이다.
핀란드는 2017년부터 2년간
실업자 2천 명에게 기본소득 월 71만 원 지급을
시범 실시했다.
여기서 드러난 장단점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1967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모든 미국인은
최소한의 생활비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고 주장했고
1974년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이클 하트만 교수가
"기본소득은 빈곤과 불평등을 줄이고,
경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라고 했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석유를 판 돈으로 주민들에게
50년 가까이 배당소득으로 주고 있다.
현재 미국 노동운동가들을 중심으로
미국 전역에서
기본소득제에 대해 불을 지피고 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대목이다.
지렁이와 새다.
먹고 먹히는 관계다.
냉엄한 현실이지만 공생관계다.
자연순환적 측면에서 그렇다.
조화롭다.
개인과 사회도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아니라면 파괴만 있는
삶의 종말을 뜻한다.
기본소득제가 아닌 사회적 복지제도가
부의 불평등과 실업 등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시행되어왔다.
그리고 억지스럽지만 조금씩 보완해 왔다.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한다.
기본소득제는 법으로 정해지는 것이라
이런 일은 없다.
이제는 기본소득제를 받아들여야 할 때다.
싫든 좋든 말이다.
시간적 여유도 없는 듯하다.
바로 AI 출현 때문이다.
위 사진은 AI가 만든 것이다.
놀랍다고 말하기는 빠르다.
이제 시작이다.
기존에 기본소득제를 촉발 시켰던
논의들은
한계에 봉착했다.
AI 출현 전과 출현 후의
기본소득제 논의는 달라야 한다.
부의 불평등과 빈곤과 실업에 대한 공포는 같지만
문제 해결점은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
기존의 기본소득제는
가진 자들이 혁명 전야를 막기 위한
유연화 전략에서 논의된 것이다.
이제 이런 속 빈 강정에 기대 수 없는
시대가 됐다.
AI 출현은 대부분의 일자리에서
사람들을 쫓아낼 것이다.
전 국민이 실업의 예속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사람과 사람의 대립에서
사람과 기계와의 투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투쟁은 사회적합의를 통해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기본소득제는
진보진영이든 보수진영이든 모두 인정하고
실시하자고 하는 사안이다.
다만 재원 마련이나 지급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인권의 문제다.
"일이 복지다. 밥이 인권이다."라는
청소스쿨의 슬로건은 여기서 나왔다.
참고로 기본소득제는 재산이나 소득
그리고 고용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액수를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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